:::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필성(朴弼成)에 대하여
1652년(효종 3)∼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홍(士弘), 호는 설송재(雪松齋).
효종의 사위이며, 도정(都正)을 지낸 태장(泰長)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효종의 딸 숙녕옹주(淑寧翁主)와 결혼하여 금평위(錦平尉)에 봉해졌으나, 1668년에 숙녕옹주는 두환(痘患)으로 죽었다.
숙종 때에는 1685년부터 1717년까지 네 차례나 사은사 또는 주청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영조 때에는 그의 장수(長壽)를 치하하여 1738년(영조 14)에 시(詩)를 내리고, 1741년에는 오언시와 궤장(几杖)을 내렸으며, 1746년에는 그를 우대하여 영릉도위(寧陵都尉)에 봉했다.
1747년 7월 97세의 나이로 죽자 8월에 효행을 치하해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박필성(朴弼成)의 자는 사홍(士弘)이고 호는 설송재(雪松齋)이며 본관은 반남으로 도정(都正) 태장(泰長)의 아들이다.
효종(孝宗)의 딸 숙령공주(淑寧公主)와 배필해서 금평위(錦平尉)에 봉해지고 숙종 때 사은사(謝恩使):주청사(奏請使)등으로 여러번 청나라에 다녀 왔다.1741년 (영조17) 90세로 궤장(机杖)을 하사받았으며 죽은 뒤 시호를 효정(孝靖)이라 사시(賜諡)하였고 공의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정려(旌閭)를 명하였다.
(문헌) 堂號備考
1652(효종 3)∼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운송재(雲松齋)로 아버지는 사도시 정 박태장(朴泰長)이고, 어머니는 김영후(金榮後)의 딸이다. 숙녕옹주(淑寧翁主)와 혼인하여 효종(孝宗)의 부마가 되었다. 현종 3년(1662) 금평위(錦平尉)에 책봉되었으나, 1668년 옹주가 종두로 일찍 병사하여 평생 홀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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