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세량(朴世樑)에 대하여
1628년(인조 6)∼1693년(숙종 19).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하경(夏卿), 호는 생불(生佛)
조부(祖父)는 길주목사(吉州牧使) 박동망(朴東望)이고,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종친부전부(行宗親府典簿) 박린(朴潾)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밑에서 성장하였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하였다. 일찍이 사예(詞藝)를 공부하여, 여러 차례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고, 음사(蔭仕)로 참봉(參奉)을 제배(除拜)받고 봉사(奉事)에 승진하였다. 1663년(현종 4)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3등 55위로 합격하여 내직(內職)과 외직(外職)을 두루 거쳐 영천군수(榮川郡守)에 이르렀다. 수령으로 재직(在職)할 때는 정치를 성실히 해서 백성들이 모두 만족하게 여겨 ‘생불(生佛)’이라고 칭하였다. 정사를 성실히 하여 부문(浮文) 말절(末節)에 구애되지 않았다. 스스로 검약에 힘써서 일상 생활에서 의복은 폐루(弊陋)하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그가 신창현감(新昌縣監)으로 있을 때에 매사가 간략하여, 관아(官衙)에 들 때도 북과 피리 소리가 없었고, 밖에 나갈 때에도 호위하는 하인이 없었으며, 병이 났을 때가 아니면 일산(日傘)도 받지 않았다. 농사철이 되면 이속(吏屬)들이 농사일을 돌보러 가서 관아를 지키는 자는 겨우 몇 사람뿐이었고, 땔나무 같은 것은 종들을 시켜서 마련하게 하였다. 틈이 나면 두건에 편복(便服) 차림으로 지팡이를 짚고 거닐어도 때때로 백성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반남박씨홈페이지(박찬무)(http://www.bannampark.org)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牧民心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