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珍/1905.7.10~1974.10.26)
父 朴箕陽
연극인. 호 우석(愚石). 본명 승진(勝進). 서울 출생.
대한제국 시절 함경도 감사를 지낸 박기양(朴箕陽)의 3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유년시절부터 연극과 무성영화 등에 관심이 깊었다.
1923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친 뒤,
1926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 중퇴하고,
1927년 극단 ꡐ산유화회(山有花會)ꡑ를 조직하였다.
1929년 개벽사(開闢社) 편집국에서 근무하였으며,
1936년 동양극장(東洋劇場) 문예부 연출 담당이 되었다.
1949년 문교부 예술위원, 그 해 무대예술원(舞臺藝術院) 이사장이 되었다.
1954년 서울시 문화위원․무대예술원장이 되었으며, 그 해 예총(藝總)최고위원에 선출되고, 국립극단장(國立劇團長)에 임명되었다.
1960년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고,
1962년 연극협회 이사장에 선출되었으며, 그 해 국립극장 운영위원장으로 활약하는 등 일생을 연극계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연출작품은 대체로 사실주의 기법을 기본으로 삼으면서도 신파극적인 과장표현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희곡작가로도 많은 작품활동을 벌였는데 자유분방하면서도 해학극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또한 서구식 정통 희극보다는 소극형(笑劇型) 극본을 많이 쓴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주요 희곡작품으로는 《절도병 환자》(1930) 《끝없는 사랑》(1955) 《이차돈의 사》(1968) 등이 있고, 연출작으로는 《소낙비》(1927)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43) 《망향곡》(1955) 《야화》(1958) 《환상의 집》(1966) 등이 있다.
예술원상(藝術院賞)과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이글은 박태서(남일공.수원)님께서 재공해주신 내용입니다.
|
|